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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07 22:24




행복하고 싶은건 어떤 사람이든 똑같을 것이다. 하지만, 행복이란건 딱히 정해진 기준이 없다. 즉, 사람마다 다 틀린것이다. 누군가는 하루하루 숨쉬며 살아가는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낄것이고, 누군가는 좋은 환경에서도 행복을 느끼지 못할 수 있다.




 왜 사람마다 행복의 기준이 틀린것일까?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생각을 가지고 있다. 보통 자신의 생각과 상관없이 무언가에 박혀버린 고정적인 정신을 가진사람을 일컬어 세뇌당한 사람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우린 무엇에 세뇌 당하여, 이토록 행복을 추구하는 것일까? 살아가는게 고통이였을까? 아니면, 태어날때부터 고통이였을까? 아무도 그건 알 수 없다. 단지, 자신의 기준만이 있을뿐 그 기준마저도 없는사람은 " 행복합니까?" 라는 질문에 쉽게 대답을 못한다. 


행복은 멀리서 찾는게 아니라는말을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그렇다. 행복의 기준을 모르겠다면, 가까운곳 부터 찾으면된다. 예를 들어 숨쉬는것 자체부터 행복이라 생각한다면 자신에게 있어서 행복의 기준은 숨쉬는것 자체이다.




☞ 진실을 알면 현실이 고달플 수 밖에없다?


사람은 동물과 달리 여러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또한 늘 혼자 학습하고, 생각하는 실천을 통해, 일반 동물과는 다름을 확실히 증명한다. 아래는 우리 주변에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다.


  • 【 집이 잘사는 친구와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난뒤, 계산을 할려했지만, 집이 잘사는 친구는 돈이없다면서, 나에게 계산을 맡겻다.】 
  • 【 집이 못사는 친구와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난뒤, 계산을 할려했지만, 집이 못사는 친구는 돈이없다면서, 나에게 계산을 맡겻다.】 


위의 두가지 상황을 보면, 집이 잘사는 친구는 왠지 얄밉게 보일 수 있는 반면 집이 못사는 친구는 이해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버린다. 하지만, 만약 아래와 같은 경우는 어떨까?


  • 【 집이 잘사는 친구가 나에게 전화가 왔다. 전화의 용건은 금방 갚을테니 천만원을 빌려달라는 거였다.】 
  • 【 집이 못사는 친구가 나에게 전화가 왔다. 전화의 용건은 금방 갚을테니 천만원을 빌려달라는 거였다.】 


바로 위의 상황같은경우는 어떨까?? 물론 자신의 돈이 빌려줄 수 있을만큼의 충분한 형편이 된다고 가정한것이다. 또한, 두 친구 모두 믿을 만한 친구라는 가정하에 생각해보자. 일반적으로 집이 잘사는 친구같은경우, 금방 갚겠지라는 믿음을 갖게 되겠지만, 집이 못사는 친구 같은경우 이친구가 정말 갚을 수 있으려나? 라는 의심을 갖게된다. 이러한 편견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정말 안타까운 현실이다. 요즘같은 세상은 잘될려면 잘살고 봐야된다. 과거 개천에서 용난다라는 말은 말 그대로 개천이 있는 시대이다. 요즘은 개천이란말은 익숙 하지 않다. 하수구에서는 미생물만 자라는것처럼 개천에서는 개천에서 살 수 있는 생물만 자라게 될뿐이다. 즉 다시말해 용도 용굴에서 나는 것이지 개천에서는 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개천에서 용난다라는 속담에서 용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일반적으로는 어려운 환경에서 열심히 노력하여 출세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하지만, 요즘 세상에 출세를 하기란 정말 힘들다. 또한 출세의 가치도 돈에게 평가를 당하는 추세이다.


생각해 보아라, 용이 날 수 없다면, 그건 한 낱 큰뱀에 불과하다. 대통령 또한 사람들의 지지가 없다면, 한 낱 독재자에 불가하다. 즉 이말은 출세를 하여도, 본질에 맞게 행동하여야 참된 출세라고 할 수 있다는걸 뜻한다.




☞ 희망은 늘 가까이 있다!


만약 사는게 재미없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그나마 행복한 사람이다. 그이유는 그런생각을 할 수 있다는것 자체가 아직은 희망이라는 끈이 있다는것이다. 


혹시 벼랑끝에서본적이 있는가? 벼랑끝에 서면, 어떠한 희망도 가질 수 없다. 단지 할 수 있는건 또다른 희망을 찾기 전까지 어둠속을 헤메는 일이다. 사람은 삶이 위급하다는걸 몸으로 느끼기 전까진 깨닫지 못한다. 몸이 먼저 반응해야 알 수 있듯이, 자신의 몸이 망가지고 나서야, 위급하다는걸 깨닫게 된다. 


몸이 크게 아픈데 없이 건강하다는건 아주큰희망이 있는것이다. 벼랑끝에선 사람들은 건강한 사람이 희망일 때가 많다. 즉, 피아니스트가 손가락을 못쓰게 된다거나, 축구선수가 발목을 평생 못쓰게 되는등, 하고싶은건 많은데 시작조차도 못할 때의 슬픔은 말로 표현 할 수 없을것이다. 


이처럼 누군가에게는 시작이라는 찬스를 주지만, 또다른 누군가에게는 시작이라는 시도조차 못하게 만드는게 건강이다. 자신의 몸이 건강하다는것 그 것 보다 더 큰 희망은 이세상에 없을 것이다. 


벼랑끝에서 희망을 얻을 때도 있다. 벼랑끝에 몰렸다고 해서 모든걸 포기해버리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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